l 등반리더 : 이운배, 박성록, 김미숙, 양주종, 신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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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 백두대간 열두번째구간(미시령-진부령)2014년 3월 ××일.무박,(요들산악회) 1.804회 산행.

코스;미시령(미시파령.56도로,826m)-상봉(1,239m.돌탑)-신선봉(1,212m)-대간령(큰새이령, 641m)-마산(1,052m)-진부령(46국도,520m) (14,95km/8시간50분

평상시 8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눈과 도로 구간 때문에 1시간정도 더 걸렸다.

미시령 도로 통제가 아직까지 풀리지 않아 이곳 에서 걸어 올라갔다,

도적폭포 모텔 펜션은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지만 ......

20025D~1.JPG 20B937~1.JPG

도로따라 40여분  걸어서 미시령에 도착.

철망 넘는것은 전과 같은 방법이다.

미시령에서 1시간 15분만에 도착한 상봉.

민들레님과 김미숙 대장님.

신선봉을 지나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다 만나지는 나무.

약간 멀리 보이는 병풍바위봉과 마산이 보인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신선봉을 갔지만 우리부부는 오늘은 가지 않고 직진 길을 찾았다.

내려와서 바라본 신선봉.

헬기장의 삼각점(헬기장도 새로 만들었고 등산로 정비및 교통호 정비도 해두었다.)

새로 정비한 헬기장에서의 민들레님(신선봉을 배경으로)

선두에서 길 안내에 가장 수고하신 우연희 대장님과 함께.

앞으로 가야할 백두대간의 마루금(병풍바위봉과 마산)

마산(1.051.9m)에서 동해안으로 분기한 죽변봉(고깔봉.630.9m)능선.

대간령(새이령)

미시령에서 3시간 30여분 걸렸다.

이곳에서 우대장과 우리부부는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의 식사가 끝나자 후미들도 도착  식사중이었지만 먼저 출발한다.

대간령에서 올라가면 만나지는 너덜길과 암릉길은 우회하여 새로운 길을 내어 놓았다.

바라본 소간령과 마장터 계곡.

대간령에서 미시령까지는 산림청에서 산길정비도 많이 했고 새로운 이정표도 많이 만들어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안해도 괜찮을 너덜길을 우회하며 새로운 길을 낸다는것 이것은 바로 자연 훼손이었다.

저곳이 암릉과 너덜길을 우회한 곳인데 실지로 넘어보면 하나 위험하지않고 오히려 재미나는곳이며 시원한 곳이다,

한쪽엔 눈이 아직도 많았지만 눈 녹은곳 새봄이 왔음을 이들이 증명해준다.

병풍바위 오르기전 편편한 곳(나무들 자람이 시원해 보기 좋다)

오늘 산행중 제일 힘들고 고통 스러운곳,(병풍바위봉 오르기 직전)

아직도 눈이 무릎까지는 쌓여있다.

영지쪽은 눈이 없어도 북사면은 아직도 눈이 무릎까지는 빠진다.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병풍바위,

병풍바위에서 바라본 인제와 주변의 산 너울 모습.

바라 보이는 흘리.

병풍바위봉이라고 이름도 적어 놓았네!

병풍바위봉에서 마장터로 이어지는 마루금.

새로세운 이정표.

내가 이름지은 춤추는 나무.

마산정상.(산경표에는 마산으로 되어 있는데......)

남한 백두대간의 끝인 향로봉과 그 산줄기 모습.

흘리와 향로지맥의 능선.

산림청에서도 마산봉이라 부르는군요,

어려운 새벽 빙판길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위험은 없습니다.

우리부부도 기념사진 하나 남깁니다.

마산에서 바라본 병풍바위봉,

알프스스키장과 흘리마을.

스키장은 부도난지 오래되어 주변 유휴지공간에 어린 전나무를 빼곡하게 심어 놓았다.

부도난 알프스 리조트 건물.

누군가 빨리 바로잡아야 할 백두대간 마루금(작은 소류지 둑으로 대간이 이어진다는것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한때는 이곳에도 군인들이 근무했는데 오래전부터 비어있는 군 부대.

저렇게 많은 비닐하우스가 왜 이렇게 비어 있을까?

저분들은 대간 종주를 마치고 그 기념비를 세우고 식사를 하면서 우리에게도 음식을 줘 시장하던차 맛있게 먹었다.

먼저도착하여 사진부터 찍었다.

백두대간 진부령 대형비석을 왜 저 아래에다 세웠을까!

그야말로 터줏대감 진부령 돌비석이다.

비록 11차종주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졸업식은 일찍 하는 셈이었다,

요들산악회 8기 종주대는 오늘 영광의 완주증을 받는 날이다.

완주를 한 오늘의 8기종주대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완주를 무사히 마침에 감사하는 산신제를 올리는 중이다.

모두 감사하는 마음이며 축하드립니다.

남아있는 구간 열심히 부지런히 종주하겠습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는 속초로 와서 회와 매운탕으로 배 부르게 점심식사를 합니다.

헤어지기 서운하여 끼리끼리 사진으로 그리운 얼굴들 남겨봅니다.

언제나 말없이 후미를 지켜주는 박성록 대장님과 우리부부.

우리 부부만의  기념사진.

백사장에서의 김미숙 대장님과 민들레님의 소녀같은 모습,

여러분 백두대간 종주 정말 축하드립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산길에서 자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부부의 11차 종주증.

 

          (산행후기)

  이 세상에는 빠르고 빠른 것이 너무 많아 과연 어떤 것이 제일 빠른 것인지 누구하나 제대 로 아는 이 없을 것 같아 내 입장(立場)에서 볼 때 세월만큼 빠른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斷言)하고 싶다.

남(南)쪽의 꽃소식에다 갑작스런 기온 상승으로 어느 틈에 봄이 없어진 것 같은 착각에 오늘도 미시령에는 잔설(殘雪)더미가 희끗 희끗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지만 맨 손에도 손 하나 시리지 않는 훈훈함이었지만 역시나 바람만은 예나 다름없이 강하게 불어준다.

그런데도 미시령 구도로 입구에는 차량진입통제 바리게이트가 길을 막고 있어 할 수없이 모두 하차 40여분 힘들게 고개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우리는 어차피 불법산행을 각오하고 출발 했지만 도로사정으로 볼 때는 하등의 통제해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인데 처사치고는 너무 지나친 일방적이란 생각이지만 어디 하소연 할 길 없이 묵묵부답(黙黙不答)이라 우리의 목적을 위해 수행(修行)의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아스발트 포장 오름길을 40여분 바쁘게 걸어 미시령에 도착하자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추울 것이라 예상했던 미시령에 바람은 약간 새게 불었지만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이라 부담 없이 철망을 넘었다.

백두대간 종주라는 목적에는 어쩔 수 없는 범법행위지만 이것도 나라 사랑하는 뜻이고 내 땅 내가 밟는 것이니 크게 죄스러운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양지쪽은 눈(雪)이 하나 없었지만 약간의 북사면과 오를수록 차츰 눈이 많아져 조금은 걱정되는 가운데 조심하며 안전에 더욱 신경을 곤두 세웠다.

새벽 날씨지만 영상(零上)이라 눈은 계속 녹아내리고 있었으며 많이도 질퍽거렸다.

새벽에다 눈까지 많아 샘터도 구분하지 못하고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상봉에 도착했다.

많은 눈으로 인해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부러져 길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곳이 한 두 곳 아니었으나 열한 번째의 종주길이라 어림짐작으로 찾아가는데 조금씩 까다로운 곳이 있었긴 해도 길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한 느낌이었다.

상봉 돌탑이 무너져 흉물스러웠는데 누군가 대충 또 모아 두었다.

상봉에서의 내리막은 약간 위험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조심해서 잘들 내려왔다.

북사면이라 얼어있어 정말 미끄러웠다.

화암재를 거쳐 신선봉 삼거리까지의 길은 휘어진 나무들 때문에 여름철에도 많이 불편했는데 눈 속 새벽길은 정말 진행이 어려웠다.

뒤 따르는 대원에게 신선봉 가는 길을 대충 일러 주고는 우연희 대장과 우리부부는 대간령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조금 헤매기도 했다.

리번들이 있으면 많은 도움 되는데 도저히 분간키 어려운 가운데 삼돌이 리번이 이쪽이라며 반겨준다.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그길로 바로 대간령까지 눈에 미끄러지고 빠져가며 힘은 들었지만 재미나게 내려왔다.

대간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마침 후미들이 도착하여 자리를 비워주고 우리는 이제 마산을 향해 올랐다.

대간령부터는 길이 많이 정비되어 진행에 많은 도움을 주긴 했지만 암릉(너덜)길을 폐쇄하고 새로운 길을 낸 산림청의 처사가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윗길 가로막고 나무 잘라내며 새 길 낸 것은 바로 자연 훼손이며 국고낭비의 현장 이었다.

마산까지의 길은 그야말로 힘든 산길이었다.

눈도 많았지만 눈들이 힘이 없어 푹푹 빠지는 바람에 진행 하는데 정말 어렵게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기온 상승으로 눈이 녹아 무릎까지 빠질 때는 다시 올라 오는데 많은 힘이 들기도 했지만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오랜만에 마산 정상 바위에 정상석이 세워져 보기 좋았다.

어느 산악회에서 종주 기념으로 제작하여 세운 모양이다.

출발한지 9시간 가까이 되자 진부령에 도착했다.

도로 따라 걸어온 시간이라 그렇지 실 종주시간은 8시간 잡으면 적당할 것 같았다.

진부령에 도착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아직은 많은 구간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언제나 이곳에 서면 쓸쓸함과 고독감이 구름에 비 몰려오듯 가슴이 북받치고 목 메이는 심정이라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런 감정 보다는 왠지 쫒기는 그런 심정이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드디어 향로봉을 눈앞에 둔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생각하니 한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실 거리 800여km를 매주 쉼 없이 종주를 한 여러 대원들에겐 전천후(全天候) 산꾼(山君)이란 명예스러운 대명사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파노라마로 다 엮어낼 수는 없겠지만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지난세월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추억만은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알토란같은 생생한 체험일 것이다.

이제는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념(理念)의 벽 때문에 여기 향로봉 발치에서 끝을 맺어야만 하는 이 심정 대한민국 국민들 중 알아줄만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같은 나라 같은 동족이라고 하면서도 갈 수 없는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염원해 보지만 이것조차 제대로 된 종주를 하지 못하고 범인 아닌 범죄의식으로 국공파의 눈을 피해 도둑산행으로 이 위대하고 성스러운 백두대간종주의 클라이막스를 장식 한다는 것에 대한 울분은 감출 수없는 우리들의 심정일 것이다.

한 번도 아닌 하물며 열한 번째의 종주를 하면서도 더 이상의 진전도 없이 매번 향로봉 발치에서 축배를 든다는 것 부끄러운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고 고백이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對話)에 미소(微笑)가 흐른다면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메마른 세상이라며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이 사는 살아볼 만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완주 증을 받은 대원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영원한 우리 백두대간을 계속 사랑해 주시길 기대하며 지나온 대간 길을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

Atachment
첨부파일 '1'
  • 정병훈 2014.03.30 19:33
    몇번을 사진과 함께 올렸으나 3~4일 지나면 사진이 모두 배꼽처리가 되어 이번엔 아예 사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능력 부족이니 양해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사진을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의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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