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등반리더 : 이운배, 박성록, 김미숙, 양주종, 신재근
since 창립일 : 1981년 10월 19일 / 홈페이지 2001년 8월 9일 / E-MAIL : sansaram@kor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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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6일.
미시령~마등령 구간 종주를 위해 태풍 산산이 몰려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몸을
싣고 미시령으로 향했지만 미시령 고개에서 마주 친 공단 직원들 때문에 설악동 소공원으로
회군하였습니다. 참담한 마음으로.
비선대~마등령~저항령~황철봉까지 진행 후 다시 저항령으로 돌아와 길골을 통해 백담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산행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땜빵을 전제로 하는 산행이기에 마음이 무겁고, 내키지 않았죠.
내키지 않으니 발걸음도 무겁고, 전날에 내린 비 때문에 미끄러울 바위며, 안개 속에서
너덜을 지나야 할 일, 조망도 포기하고, 다시 돌아 올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미시령은 언제 밟을 것인가?
결국, 금강굴 조금 위에서 하산하였고, 속초로 내려와 바다 구경하고, 백담사로 이동하여
백담계곡을 걷는 것으로 마감하였습니다.

바쁜 일이 있으니, 9월 23~24일은 가까운 산에나 다녀오라는 N회원님의 협박(?)에 섣불리
정맥 길을 이어가기도 어렵고, 열리지 않은 한계령으로 가기도 그렇고 해서, 지리 종주를
신청했습니다.
설악산 단풍이 10월초에 절정일거라는 보도를 접하고는 “그래 이번 주는 지리에 들었다가
10월초 단풍 좋을 때 단풍놀이도 하고, 땜방도 가자”

어떻게 해야 설악을 잘 “말아 먹을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9월22일부터 한계령을 연다는 공지를 보고는 대장님께 전화하고, 한계령이
열린다면 한계령에 올려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는 준비합니다.
희운각에서 1박을 할 요량으로 버너, 코펠, 기타 먹거리를 합치니 10Kg이 넘는군요.
그리고. 땜빵 갈 때 혼자 가지 말고 연락하라는 고문님께 전화 드려 긴급히 SOS를
요청하고, 급하게 저녁 먹고 배낭 메고 동대문으로 나갑니다.

고문님 뵙고, 대장님 뵙고, 다른 대장님께 미시령 통과방법에 대한 가르침도 받고 버스에
올라 강원도로 향합니다. 복구공사 때문에 길이 험합니다.
무사히 내설악광장 휴게소에 도착하여(12:55), 이른 아침을 먹습니다.
약간의 한기를 느낄 수 있는 바람이 불지만 하늘에 별은 참 많습니다.
서서히 산행준비를 하며 미시령 터널을 지나고 오색으로 갑니다.

오색은 마치 시장 터 같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떠들고, 고함치고.
벌써 이러니 10월 한창때는 어떨지 안 봐도 훤합니다.
다른 님들이 전부 하차하여 매표소를 통과하고, 뒤이어 다른 산악회에서 한계령에 오르실
두 분과 합류하여 한계령으로 오릅니다.
한 분은 필례약수 초소에서 하차하여 점봉산으로, 세 사람은 한계령으로 갑니다.

한계령 도착. (03:23)
원래 계획은 필례초소에서 내려서 한계령 정상까지 걷고,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날 밝을 때까지 쉬다가 환해지면 오르기 시작해서, 구경하고, 사진 찍고, 널널하게 놀다가 대청에 오르고, 중청산장에서도 먹고 쉬다가 오후에나 희운각에 도착해서 1박 하려 했는데, 동행이 생기고, 고문님께서도 미시령까지 달려보자고 하시니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무거운 제 배낭은 어쩝니까?

휴게소 옆을 지나 계단을 오릅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08계단 이라죠.
계단을 지나, 설악루를 그냥 –동해와 만물상이 조망된다지만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지나고, 위령비를 지나 불 빛이 반짝이는 매표소를 통과합니다.
매표는 오색에서 대장님이 하셨으니 보여주고는 통과하여 쪽문을 지납니다. (03:30)

가파른 길을 오릅니다. 비가 왔는지 흙은 젖어 있고, 그 동안 통제되면서 사람의 왕래가
적었는지 부드럽습니다. 10여분의 가파른 오름 후에 첫 이정표를 만납니다.
→ 중청대피소 7.2Km.

계속 고도를 높입니다.
두 번째 이정표는 ← 한계령 1.0Km, → 중청대피소 6.7Km라고 기재되어 있고, 이곳이
1,307봉이라고 합니다. (04:05)
한계령~서북능 삼거리의 중간 정도 되는 곳입니다.

잠시 길을 잘못 들었지만, 이내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합류하고 이제부터 몇 번의
오르내림이 시작됩니다.
늘 그렇듯 산행 시작 후 1시간 정도는 땀을 흠뻑 흘립니다.
게다가 2주간 산행을 쉬었더니 금새 힘이 듭니다. 다행히 오름 길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모양입니다.

지난 수해 때 쓸려나갔는지 등로가 많이 훼손된 곳을 지나고, 바로 철 구조물이 지그재그로
박힌 바위지대를 지납니다. (04:40)
바위지대에 오르면 커다란 바위 아래에 제법 큰 공간이 있어 비박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잠시 쉬어 갑니다. (04:45)
바위를 타고 우측으로 이어가게 되면 곧 서북능삼거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04:50)

한계령에서 2.3Km왔고, 진행방향에서 좌측으로는 귀떼기청봉으로, 우측으로는 끝청을 지나
대간 길로 향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서북능 걷기가 시작됩니다.
오름 길이 이어지지만 그리 힘들지 않고, 작은 바위지대도 지납니다.

어두움도 익숙해졌고, 길도 차츰 좋아지고 있으니 속도를 내어봅니다.
공터에 ← 한계령 4.1Km, → 중청대피소 3.6Km 이정표가 있는 밋밋한 봉우리를 지나고,
20여분 후에는 → 중청대피소 2.6Km 이정표가 세워진 봉우리를 통과합니다.
아마도 1,474.3봉으로 짐작됩니다. (06:01)

사위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밝아오고 있어 랜턴을 꺼버립니다.
등로 좌우에는 벌써 울긋불긋 옷을 갈아 입으며 가을 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도 없어 세 명이 여유로운 산행을 즐깁니다.
서북능 명물이라는 개선문을 지납니다. (06:17)
좋은 길이 이어지고, 뒤돌아보면 귀떼기청봉과 멀리 가리봉이 시원하고, 발 아래로는
등선대와 만물상 구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오색의 온천건물들은 성냥갑처럼 작습니다.

짧은 너덜을 지나고, 너덜 바위에 끝청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06:35)
한계령에서 3시간 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1,604m의 끝청에 섭니다. 공룡능선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지만, 좌측에 펼쳐진 용아능은
그림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저기도 가봐야 될 텐데. 아~~ 좋을시고.

끝청에서의 감동을 뒤로하고 중청으로 갑니다.
조금 오르니 철조망이 쳐있고, 군 시설물, XXX부대장, 출입금지 이런 말이 적힌 안내판을
만납니다. 올라온 김에 가까이서 중청을 구경하고, 돌아나옵니다.
해발 1,600m의 끝청 갈림길에 이릅니다. (07:01)
잠시 전 모든 이에게 환호성을 지르게 만들었을 해가 대청봉 뒤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 빛이 너무나 밝아 대청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오호라, 날 한번 잘 잡았구나.

하지만, 대청에서 하산하는 님들과 중청대피소의 인파, 대피소에서부터 끝청 갈림길을 지나
소청에 이르는 산객들에 질려버립니다.
등로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오색에서 대청까지 줄지어 올라오셨을 분들이 소청에서 희운각까지 줄지어 내려갈 텐데,
대청에 올랐다 다시 돌아 온다면 어둡기 전에 황철봉 너덜을 통과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청은 눈으로만 확인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지나갔는지 자갈 돌은 미끄럽고, 지, 정체는 이어지고 염치없지만 추월을
하면서 급하게 소청으로 나갑니다.
공사를 하는지 공사자재가 널려 있고, 여기저기 파헤쳐진 소청에서 용아와 서북능을
조망하고, 사진에 담고는 바로 희운각으로 향합니다. (07:16)

수해에 등로가 휩쓸렸는지 등로 정비를 하는 중인지 모르겠지만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도 파헤쳐져 있습니다. 단풍철이 끝날 때까지 공사가 완료될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는 더
혼잡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행 중이라 뭐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공사하는 것도 영 마땅치가 않습니다.
나중에 공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보아야겠지만, 이제 한 겨울에 엉덩이썰매타기는
틀려 보입니다.

희운각으로 한 발자국 다가설 때마다 공룡능선은 한 발짝씩 다가옵니다.
끝청과 소청에서는 안개 속에 숨어 있었는데, 조금씩 제 모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파른 내리막 길을 지나고, 철 계단과 임시로 보수해 놓은 나무사다리를 지나, 계류를
건넙니다. 희운각대피소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엉덩이 붙일만한 곳이 없습니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쉬고 싶었는데 혼잡스러운 것이 싫어서 조금 더 진행하니 무너미고개
이정표를 통과합니다. (08:03)

공룡능선에 접어듭니다.
불과 3주전에 공룡능선을 지났는데도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고,
로프를 부여잡고 암릉을 오릅니다.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힘들지만 참아보자. 3주전 신선봉에서의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거야”
하지만 그래도 힘이 듭니다. 배도 고프고, 배낭무게에 어깨는 눌리고.

드디어 신선봉 정상입니다. (08:30) 3주전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3주전 신선봉에서 본 공룡은 여름이었는데, 세상에나 지금은 가을입니다.
배낭을 내리고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가져봅니다.
암릉에 누워,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안개며 구름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습니다.
간단하게 과일과 쵸코파이로 아침을 때우고도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뒤따르던
몇 팀을 보내고 나서야 일어섭니다. 때마침 공룡을 덮고 있던 안개도 걷히고.

범봉과 1,275봉, 용아장성능을 보며 힘든지 모르게 진행합니다.
무슨 복이 있어 9월 한달 3번이나 설악을 찾아와 이런 호사를 누리는지 모르지만
기막힌 날씨하며, 멋진 설악의 모습에 넋을 놓아버립니다.
거기에서 지난 번에 사진 찍었고요, 저기를 돌면, 여기가 나오고, 거기에서 본 경치가
멋졌는데 하면서 3주전에 걸었던 길을 이제서야 떠올립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1시간 정도를 걸었나 봅니다.

지난번에는 지나쳤던 샘터에 도착하여 물 마시고, 식수를 보충합니다. (09:42)
울산바위가 잘 보이는 곳을 지나고, 암릉에 올라 뒤돌아보면 대청과 중청. 지나온 신선봉이
멋진 자태를 자랑합니다. 그리고는 1,275봉 오르는 슬랩지대가 이어지고.
또, 땀 꽤나 흘려야 합니다.
뒤돌아보며 조망하는 척하며 쉬기도 하며, 천천히 오릅니다.

→ 마등령 2.1Km 이정표가 서 있는 1,275봉 안부에 도착합니다. (10:10)
1,275봉 맞은 편 암릉 밑에 배낭을 벗어놓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고 가시고, 또 1,275봉에 오릅니다.
물 마시고, 과일 먹고 쉽니다.
한계령에서 같이 출발하신 님이 도착하시어 반갑게 인사하고 좀 더 쉬고는 출발합니다.

내림 길 초입에 서면, 나한봉과 1,326.7봉, 그 너머로 황철봉이 보입니다. (10:30)
왠지 무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암릉 길을 오르고 내리면 마등령이 1.7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10:44)
설악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시원한 곳입니다.
지난 번에 놓친 세존봉과 울산바위 사진을 담고 다시 암릉 길을 따라 힘겨운 오르막 길을
오릅니다.

또, 다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고, 지난 종주시에 약간 위험했던 구간을 무사히 지나고,
공룡능선 중 가장 험악한 구간-세 가닥 로프가 매어져 있는 곳-을 지납니다.
→ 마등령 1.1Km 이정표를 통과하고(11:08) 곧이어 나한봉에 도착합니다. (11:36)

나한봉부터 마등령까지는 지난 번 구간과는 매우 상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번에는 편안한 길을 지난 것 같은데, 조망 좋은 암봉에 올라 섰다가, 너덜을 지납니다.
숲을 지나고 나니, 눈에 익은 마등령 독수리가 보입니다. (11:51)
반갑습니다.
무너미고개에서 3시간 50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계획한 것과 큰 차이 없이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한 구간의 시작입니다.
서두르시는 고문님 뒤를 따라 급히 마등령 정상으로 오릅니다.
5분만에 마등령 정상(1,320m)에 도착합니다.
몇 분의 산님이 있지만 조용하고, 여유롭습니다.
금강굴 방향에 세워진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 뒤편의 탁 트인 전망바위에 올라 대청과
공룡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우~와 좋구나.

출입금지 표지판을 지납니다.
이내 작은 공터를 만나고, 여기에서 범봉의 뒷모습을 확인합니다. (12:03)
범봉은 뒷모습보다는 앞모습이 더 멋집니다.
작은 참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를 이어 갑니다.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지나갑니다.
바람 때문에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모양입니다만 조망은 끝내줍니다.

공터에서 10여분이면 오래된 삼각점(?)이 있는 1,326.7봉에 도착합니다. (12:13)
대간 길은 정상 못 미쳐 좌측 길을 통해 아래쪽 너덜로 이어지고, 정상을 넘어 직진하면
세존봉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삼각점이 박힌 정상에 오릅니다.
설악산 제1의 전망대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두 번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벽부터 진행한 마루금과 나가야 할 황철봉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자리를 펴고,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주위를 조망하며 식사를 하는 중에도 헬기가 쉬지 않고 떠다닙니다.
구명용 장비를 늘어뜨리고 대청 근처로 날아갔다가, 구명장비를 거두고 백담사 쪽으로(?)
돌아가는 모습인데 인명사고가 아니기만을 바랍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미시령까지 가는 광주에서 온 두 명의 대간 종주자를 만납니다.
잘 됐다 싶어 같이 가기로 합니다.

배낭을 꾸리고 일어서려는 순간 발목과 왼쪽 정강이 부분이 욱신거립니다.
대간 종주 중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제 시작인데 걱정입니다. 스프레이파스를 듬뿍 뿌려주고 좌측 길로 내려섭니다. (12:50)
너덜길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애들 장난”입니다. 게다가 길도 잘 나 있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짧은 너덜은 이내 끝나고, 숲 길로 이어집니다.

길은 1,249.5봉을 향해 이어집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이어지는 길은 포만감 때문에 더욱 힘들어 지고, 그런 사정도 모르고
앞에서는 잘도 진행하십니다.
출발한지 20여 분 만에 처음으로 미시령에서 올라오는 산객을 만납니다.
9시 전에 미시령에서 올랐으며, 그때에는 공단직원들이 없었다고 전해줍니다.

1,249.5봉 가는 길은 길고, 오르내림도 많고, 암릉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구간입니다.
지도상에는 별도로 너덜지대라고 표시하고 있지만, 1,326.7봉을 넘어서면서부터 전체가
너덜지대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간혹 숲 길이 나오기는 하지만.
게다가 이정표도 표시기도 없습니다.
다만, 붉은 색 화살표를 따르며 길을 잡아 나갑니다.

1,326.7봉을 지나 1시간20여분쯤 진행할 때, 정면으로 커다란 암봉이 보입니다. (14:08)
하지만 오르지는 않습니다.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는 것으로 보아 선답자들이 말하는 1,249.5봉으로 짐작합니다.
지난 산행시에 고문님께서는 안개에 묻힌 이 바위 봉을 보고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노라고 그러십니다.
너덜을 지나 우회하면서 보니 정말 대단합니다.

뒤돌아 1,326.7봉과 대청, 중청에 작별을 고합니다.
다시 암릉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급경사의 너덜지대가 나옵니다.
오름길 너덜입니다.
눈 앞을 가로막고 선 저항령 직전의 바위 암봉에 질려버립니다.
너덜을 지납니다. 스틱 한 쌍을 한 손에 움켜쥐고 한 손으로 너덜을 잡아 끌며 힘겹게.
겨우 15분 정도의 오름인데 힘이 쪽 빠집니다.

암릉 사이로 길이 보이고, 붉은색 화살표로 바위위로 오르라는 표시가 보입니다. (14:26)
바위를 잡고 오르니 바람이 불어줍니다. 가쁜 숨을 고르며 쉬어갑니다.
너덜을 지나, 저항령으로 어림되는 곳이 보이고, 앞에는 황철남봉이 너덜을 흩뿌린 체,
올라 오려면 올라와봐라 그러고 있습니다.
1,249.5봉의 암봉 상단부가 보이고, 저항령계곡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흘러 드는 쌍천이
마치 뱀처럼 휘어집니다.

일행 분들은 벌써 너덜을 내려가고 있으니, 길을 잡습니다.
붉은색 페인트 표시와 돌탑을 따라 우측으로 치우쳐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커다란 너덜바위를 아래로, 위로, 옆으로 통과합니다. 주위의 전망이 좋지만 내려가는데
신경을 쓰다 보니 제대로 구경하기가 힘듭니다.
일단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5분 정도 너덜 길을 지나고 숲으로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흙 길이 이어지고,
넓은 공터에 풀이 많이 자라있는 저항령에 도착합니다. (14:50)
흙에 발을 디디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껴집니다.
배낭 내리고, 물 마시고, 등산화 끈도 풀어 놓고, 과일 먹으며 쉬어 갑니다.
광주에서 오신 종주자들은 내일 진부령까지 끝낸다고 하시고, 고문님께서도 “우리도 같이
진부령까지 갈까?” 그러시는데 아이고, 저는 안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지라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출발합니다. (15:00)
보라색 투구꽃과 힌진범이 눈에 보이지만, 그냥 지나쳐 오릅니다.
초입의 흙 길을 지나자 다시 커다란 바위들을 지나고, 너덜의 징조를 봅니다.
몇 구비 지나자, 또 다시 징그러운 너덜이 보입니다. 크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다시 스틱을 고쳐 쥐고, 두 손 두 발을 이용하여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붉은 색 페인트 표시도 뜸해지고, 앞 사람들이 바위에 남긴 자국을 좇아갑니다.
일행 분들은 앞서서 잘도 나가시는데 쉼이 잦아집니다. 거리는 더 벌어지고.
힘들 때마다 뒤돌아 보며 구경하는 척하고.

이어온 마루금이 멀어집니다.
너덜 중간에 도착했을 무렵에 일행 분들은 벌써 정상에서 쉬고 있으니, 힘을 내어 봅니다.
저항령에서 40분만에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15:41)
암릉사이에 사각 돌기둥이 있고, 천연보호구역이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선답자들이 말하는 황철남봉입니다. 바람도 불어주고, 전망도 아주 좋습니다.
먼저 출발하시라 하고 좀 더 쉬어 갑니다.

이어지는 길은 숲으로 이어진 흙 길입니다.
많이 뒤쳐져 있어 속도를 내어 봅니다.
10여분 후에 등로 우측에 있는 또 다른 천연보호구역 표지석을 만납니다. (15:56)
황철봉(1,391m)입니다만 주위는 꽉 막혀 있어 조망은 없습니다.

황철봉을 그대로 지나고, 흙 길을 지나더니 다시 너덜지대가 나옵니다.
하지만, 짧고 어렵지 않습니다.
황철봉으로부터 30여 분 만에 암릉 정상에 섭니다.
정상주위에는 주목으로 보이는 나무들도 있고, 조망도 좋습니다.
삼각점(설악 22)이 박혀있는 1,318.3봉으로, 황철북봉 입니다. (16:26)

삼각점을 지나 직진하던 광주 종주자 한 분이 길이 없다고 되돌아오시는데, 지도를 보니
황철북봉에서는 직진이 아니고 삼각점 왼쪽으로 대간 길이 이어집니다.
살짝 내려서 짧은 너덜을 지나면, 그 뒤로 길고 커다란 너덜바위가 족히 수백m는 널려
있습니다.
황철봉 너덜 구간 중 가장 험악한 구간입니다.
다행인 것은 가는 쇠기둥이 박혀 있고, 쇠기둥을 따라 줄을 연결시켜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해도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다만, 12시간이 넘는 산행으로 지친 몸과 다리가 걱정입니다.

조금 내려서니, 미시령고개로 오르는 도로가 눈에 보입니다.
휴게소 건물은 보이지 않지만, 절개지 위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등로며, 하얀 안개를 이고
있는 상봉은 뚜렷합니다.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줄을 따라 너덜을 지납니다.
눈과 비를 몰고 와 종주자들을 괴롭혔다는 악명 높은 황철봉의 바람이 오늘은 땀을
식혀주고, 지친 몸과 마음을 감싸주는 고마운 바람으로 다가 옵니다.
끝이 보이니 서두를 것도 없고, 서두를 수도 없습니다.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잘 보이는 곳에서 쉬며 사진도 찍고, 찍어드리고 쉬어 갑니다. (16:43)

마지막 너덜을 지나면, 길은 숲으로 이어집니다.
어둡기 전에 악명 높은 너덜을 통과했고, 미시령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부드러운 흙 길이 이어지니 지친 몸이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숲 길에서 한 가족을 만납니다.
부부와 사내아이 둘.
12시쯤 미시령에서 출발했는데, 공단 직원들이 있어 고개 아래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계획대로 미시령고개 아래로 내려서면 될 것 같습니다.
한층 기분은 좋아지고, 아이들을 중간에 세우고 천천히 뒤를 따릅니다.
대간 길에서 듣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좋습니다. 앞에서 걷고 있는 부부 분들은
왜 그렇게 부러운지.

실족주의라는 푯말이 있는 갈림길을 지납니다. (17:17)
우측으로 1,092봉을 지나 울산바위로 가는 길입니다.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서는데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17:45)
미시령고개 휴게소에서 나는 소리인데, 터널이 뚫리고 지나다니는 차량이 줄어들면서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해진 것은 아닌지?
시끄럽지만 멀지 않았다는 소리이니 부드럽게 이어지는 하산 길 못지않게 반갑기만 합니다.

길 아래 낯선 차림의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누굴까 궁금해하며 잠시 멈춰서 지켜보는데, 앞서 가시던 고문님과 광주
종주자 한 분이 급하게 되돌아 오시며 숨으라고 합니다.
급히 우측 숲으로 뛰어들어, 덤불 사이로 몸을 낮춰 숨습니다. (18:00)
대간 길을 걷다 보니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랬으니 잠시 쉬어 갑니다.

그대로 계속 있다가는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아, 덤불을 헤치고 길을 찾습니다.
진부령고개로 이어지는 등로에서 우측으로 갈라지는 소로를 발견하고는 그 길을 따릅니다.
위에서는 계속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몸을 낮추고 소로를 급하게 내려갑니다.

광주 종주자 한 분은 벌써 도로에 내려서 택시를 잡았다고 하고, 세 명은 혹시나 싶어
날머리 좌우를 살피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도로로 내려섭니다. (18:25)
날머리와 안개가 몰려온 미시령휴게소를 사진에 담고는 택시를 타고 속초로 향합니다.

두 분은 다른 일행과 합류하러 가고, 고문님과 물치에서 하차하여 대포항으로 이동합니다.
맛 난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잔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찜질방으로 이동하여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뜨끈 뜨끈한 온돌에서 피로를 풀어봅니다.

다음 날, 샤워를 하고 습관처럼 체중계에 올라 섭니다.
어라, 4Kg이나 빠졌어. 어떻게 찌운 건데, 4kg이나.

찜질방을 나서 –전날 산에서 본 부부분과 이이들을 이곳에서 또 만났습니다-, 아침을 먹고,
서울을 향해 출발합니다
이제 졸업만 남겨두고 몸도 마음도 개운합니다.


* 오늘 산행 정리
1. 일자: 2006.9.22~23
2. 참석인원: 고문님과 둘이서
3. 날씨: 맑음 (산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음)
4. 산행구간: 한계령~마등령~미시령
5. 소요시간: 14시간 55분
6. 산행 거리: 23.73Km(셀파산장 실측자료 기준)
7. 총 진행 거리: 639.38Km
8. 기타:
- 총 진행 거리는 지난 34구간의 산행거리 18.6Km를 차감하고, 금번 산행거리
23.73Km를 가산하였습니다.
- 고문님, 비실대는 젊은 놈 데리고 산행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N회원님께 한 말씀 들을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합니다. 죄송합니다.
- 귀경 길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지나 온 대간 길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특히나, 터널을 지나면서 본 바람개비며, 멀리 고루포기와 황병산까지.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더이다.
- 미시령(彌失嶺)은 옛날에는 미시타령이었답니다. 아득할 미, 화살 시(矢) 자가
아니라 때 시(時)자를 쓰는.
“아득한 시간이 걸려야 그 재를 넘어 갈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 설악산 구간을 끝냈고, 다음에는 금강산 구간으로 갑니다.
  그리고, 졸업입니다. 그런데, 이 허전함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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