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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구간 ::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기리~수정봉~입망치~여원재

   성삼재~여원재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기리~수정봉~입망치~여원재
이 구간 전반, 즉 제3소구간은 여전히 지리산 자락이지만, 고기리 마을로 내려선 후에는 전혀 산세가 달라진다. 굵직한 능선에서 벗어나 마을 뒷산 자락을 밟는 느낌이 든다. 고리봉(큰고리봉)에서 세걸산쪽 능선이 뚜렷하지만 그리로 빠지면 백두대간을 벗어나게 되므로 조심한다. 사실 이 지점에서 고기리로 내려서는 것이 더 힘들다. 그 이유는 줄곧 뚜렷한 능선길을 밟아오다가 전혀 상황이 다른 가파른 능선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그 이름처럼 크고 명확한 산줄기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경험을 쌓는 첫 구간이 바로 이 구간이다.

◎ 제3 소구간 (성삼재∼정령치∼고기리)
힘겹게 산을 넘어가는 861번 지방도로(성삼재도로)를 뒤로 하고 1,248m의 고리봉(일명 작은 고리봉)을 향해 능선을 올라선다. 왼쪽 산동면 방면은 급경사. 오른쪽으로는 완만하지만 도로개설로 곳곳에 급사면이 생겼다. 고리봉을 지나 완경사길을 내려서면 묘봉치. 이 고개에서 만복대까지는 완경사에 억새가 우거져 있어 가을이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역시 왼쪽이 급경사 비탈이고 오른쪽은 완사면을 이루고 있다. 만복대 오름길에 샘 표시가 있고, 표시 대로 오른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샘이 있으나 수량이 미미하다. 그러므로 식수는 성삼재에서 넉넉히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정상 직전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올라서면 십자가 형상의 갈색 팻말이 서 있다. 이곳 정상에서 왼쪽(북서쪽) 갈림길을 따라 300m쯤 가면 갈림길목이 나온다. 팻말이 없으므로 주의해 찾아야 한다. 이곳 갈림길목에서 정령치는 오른쪽. 급경사 능선의 하늘을 가린 숲지대를 지나면 정령치 고개를 지나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 건너편에 정령치휴게소(전화 063-625-1172)가 있다. 정령치휴게소 주차장 왼쪽 전망대에서 능선을 타고 이어진 계단을 올라 500m쯤 경사 급한 산길을 오르면 1,304.5m의 고리봉(일명 큰고리봉)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오른쪽으로는 세걸산과 바래봉 능선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 초기에는 세걸산∼바래봉 능선으로 잘못 진행했던 팀도 있었다. 큰고리봉에서 급경사의 소나무 숲을 내려서면서부터 독도가 어려운 구간이 시작된다. 지대가 낮아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없기 때문이다. 고리봉에서 1km쯤 급경사면을 내려가면 주위가 편평해지고 작은 지릉들이 나타난다.

여기가 특히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정서쪽으로 뻗은 주릉을 잘 짚어야 한다. 무덤 하나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목장 철조망이 쳐져 있다.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다가 작은 봉을 오른 다음 왼쪽길을 잡아야 하는데, 고도차가 없기 때문에 능선을 구별해내기가 애매하다. 왼쪽으로 완전히 붙어 계곡 오른쪽으로 난 도로에 오르면 고촌마을이 나온다. 이 도로는 아까 지나왔던 정령치 도로다. 고촌에서는 주촌, 가재 마을로 이어진 730번 지방도로가 대간의 주릉이다. 토속음식점과 민박집이 있고, 길 오른편으로 진입로 가로수가 멋진 운천초등학교가 있다.

◎ 제4 소구간 (고기리∼수정봉∼여원재)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리산의 높은 산군을 벗어나 세상으로 내려왔다가 작은 마을 몇 개를 들러 다시 산으로 오르는 길목격인 가재마을. 고촌에서 가재마을까지는 대간의 주릉인 730번 지방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1km 정도 이동하면 오른쪽으로 길이 꺾어지며 버스정류장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곳에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수정봉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을 지나는 길가에 있는, “물맛이 좋다”고 마을 아낙이 일러준 우물은 길과 분리된 구조물도 없고 벽면에 이끼도 끼어 선뜻 마시기가 꺼려진다.

동네 뒷산에, 마을 입구에서도 보이는 소나무 네 그루가 멋지게 서 있고 나무 아래 작은 가지에 백두대간 표지기가 걸려 있다. 수정봉까지는 등산로 주변으로 잡목들이 약간 뻗어 있는 평이한 길이 이어진다. 수정봉 정상에는 철사줄로 당겨 세워 놓은 나무막대가 있는데, 몇 개의 표지기가 철사줄에 매달려 비비람의 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정상에서는 잡목으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진행하여 능선에 서면 오른쪽으로 운봉면 소재지와 크고 작은 동네들이 보인다. 고리봉에서 갈라졌던 바래봉∼덕두산 능선과 백두대간 주릉에 둘러싸인 마을과 도로들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안리 일대 천수답들이 햇살을 받아 작은 보석들을 깔아 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이곳이 계백장군의 넋이 어린 신라·백제의 전쟁터 황산벌이며 중간에 우뚝 솟은 산이 황산이다.

수정봉에서 잡목들이 발길에 걸리는 등산로를 20여 분쯤 진행하면 다다르는 우마차길이 곧 입망치. 소로가 뚜렷하고 길 옆으로 키큰 나무들이 잘 자라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여기서 여원재까지는 남원군 이백면과 운봉면을 좌우에 두고 마을 뒷산 주릉을 따라가면 된다.
정령치휴게소의 전망대. 뒤의 계단을 따라 올라야 대간 능선으로 가게 된다. 묘봉치에서 만복대 정상으로 이어진 대간 능선.

◎ 지리산의 열 가지 경치
제1경은 천왕일출(天王日出). 어느 산인들 해가 돋지 않으랴만 천왕봉에서의 일출 구경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기 어렵다. 평생 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할 수 있을 정도다. 피아골을 ‘지리산의 울음주머니’로 표현한 시인도 있듯이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에 이 계곡에 흘린 피가 많아 피아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피아골의 단풍, 즉 직전단풍(稷田丹楓)이 제2경이다.

제3경은 노고운해(老姑雲海). 지리산에서 흔히 볼 있는 있는 것이 산허리를 휘두른 구름인데, 특히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으뜸으로 친다. 반야봉에서 감상하는 저녁 노을인 반야낙조(般若落照)가 제4경이다. 해가 떨어지며 구름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덩어리는 자연이 만든 화려한 잔치다. 벽소령은 옛부터 화개에서 마천으로 넘나드는 데 쓰이던 고개다. 이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은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이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벽소명월(碧宵明月)이 제5경이다.

제6경은 세석(細石)철쭉. 해마다 5월 말이면 지리산에는 고운 분홍색 철쭉이 피어나 지상낙원을 이룬다. 지리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 불일폭포에서 쏟아지는 포말인 불일현폭(佛日懸瀑)이 제7경이다. 그 물보라로 인해 지리십경에 들게 되었는데, 그 냉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다. 제8경은 연하선경(烟霞仙境)이다. 연하봉의 이끼 낀 기암 사이에 가득 들어찬 고사목 숲은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제9경은 칠선계곡(七仙溪谷).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려 급류를 이루는 이 계곡은 한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골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다. 마지막 제10경은 섬진청류(蟾津淸流). 지리산을 남서로 감돌아 비단폭을 펼쳐 놓은 듯한 섬진강. 비록 열번째 경치로 꼽히기는 했지만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광은 조물주가 아니고는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 문학에 나타난 지리산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문학작품은 제목만 남아 전하는 ‘지리산가’. <고려사> ‘악지’에 나오는 이 노래는 구례에 사는 미모의 여인이 백제왕의 부름을 뿌리치고 ‘지리산가’를 지어 죽음으로써 부녀자의 도리를 지켰다는 내용이다. <동국여지승람>의 ‘지리산녀(智異山女)’와 동일 인물로 추측된다. 또,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가 남원 만복사가 배경이고, 조선시대 김일손, 이륙 등 유학자들이 기행문을 남겼는데, 특히 김종직의 「유두유록」은 명작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문학으로 꼽히는 작품 중 「춘향전」은 남원, 「흥부전」은 아영의 여원재와 팔랑치, 「변강쇠타령」은 등구·마천 등 지리산 자락 마을이 배경이다. 근래에는 황순원의 「잃어버린 시람들」, 박경리의 「토지」, 김동리의 「역마」가 있고, 6·25전쟁 후에는 이데올로기 분단문학의 현장으로 등장했다. 이병주의 「지리산」, 문순태의 「달궁」, 서정인의 「철쭉제」,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훈의 「지리산」 등이 있는데, 이들 작품은 대부분 지리산을 이념대립의 공간적 현장으로 반영,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에 따른 민족의 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마한 왕조가 지리산 개산 지리산 역사의 첫 장은 달궁(達宮)의 마한 왕조가 펼쳤다. 즉 마한의 한 부족이 이 심원계곡으로 들어와 달궁 마을에 궁전을 짓고 살았는데, 정령치는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 장군을 파견하여 지키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또 노고단 입구인 성삼재(性三峙)는 각성받이 장군 세 명이, 노고단 남쪽의 팔랑치(八郞峙)는 병사 여덟 명이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얘기도 있다. 지리산 달궁의 마한도성은 백제 온조왕의 마한 정복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하고, 지리산 마한 왕조는 후에 지리산이 김해 가락국의 영토로 편입되는 것으로 봐서 가야세력에 의해 정복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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