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 호룡곡산 (245.7m)-국사봉(230m)
전화 한 통화로 급작스럽게 엮인 무의도 섬산행.
높지않은 호룡곡산 산행 후에 바닷가에서 조개를 한 자루씩 줍는다는 그 곳.
그 조개잡이에 혹하여 금요일밤 배낭을 꾸렸다. 장화는 없어도 샌들, 양파자루, 야무지게 호미까지 챙겨넣었다. 국화가 빙긋빙긋 웃으며 말한다.
“장화 신어도 발 시려서 못 들어갈 껄. 조개? 글쎄...ㅎㅎ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설사 그렇더라도, 국화야, 너무 일찍 내 꿈을 깨지 말으렴.
토요일 오전 7시. 종로 탑골공원 앞에 모여서 출발. 어느새 해가 길어졌네.
3년 만에 다시 찾는, 그 모습이 어설펐던 국제공항 가는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다. 그래도 공항조성을 위해 여전히 깍여나가고 있는 산들이 자꾸만 아쉬웁다.
8시 10분. 무의도선착장.
무의도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코앞에 앉아있었다. 차에 몸을 실은 채로 배를 타고 무의도에 내렸다.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면 대부분 국사봉-호룡곡산을 일자로 연결산행하지만 우리는 두 봉우리의 허리부분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잇는 다리가 도로 위를 지나고 있다. 성수기에만 운영하는 듯 방치된 까페 ‘재빼기’ 옆으로 호룡곡산을 향해 오른다. 낮은 산이라 급한 길도 없고, 섬이라 나무들도 시야를 가리지 않을 만큼 키가 낮아 편안하다.
조금 오르자마자 솟는 땀. 반소매 입고 오길 잘했다. 지리망산처럼 이 섬의 나무들 역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혼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름길. 멀리 고래 모양의 소무의도가 흐릿하게 앉아있다.
금새 정상에 도착한다. 흐린 날이지만 반짝이는 바다와 뒤편의 국사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산의 정상에서 느끼는 감개무량함. 서울에서 잠시만 벗어나도 이렇게 좋은데 왜 그 안에서 다람쥐쳇바퀴 돌 듯 살고있는 걸까, 나는.
일년에 두 번 밖에 사진찍지 않는다는 대장님을 졸라 함께 찰칵! “글쎄, 오늘이 그 두 번 중의 하루라니까요.”
바닷가에서 쉬어가기 위해 원점으로 직진하지 않고 좌측 암릉으로 가닥을 잡는다. 길가에서 조금 비껴있는 부처바위는 아무 것도 새겨져있지 않은 그냥 바위이다. 그 자리서 자비로운 부처가 세상을 굽어보기 바란 이들의 염원이 담긴 바위랄까. 해안으로 가는 길은 하얀 밧줄이 양쪽에 둘리어진 소나무 푸른 길이다.
진달래 꽃봉오리 하나가 금시라도 터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양대장님, “저긴 더 많이 피었는데요”
글쎄...섬진달래는 붉어야한다는 내 강박관념과 달리 피어버린 꽃들은 너무 희끗해서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나보다 더 사진에 열중하는 이가 있어 오늘 산행은 한결 여유롭다.
국화 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늘 남의 뒤꼭지만 바라보고 다녔는데...”
드디어 하나개해수욕장으로 내려선다.
렌즈를 통하여 절경을 보여주던 해안엔 부서진 부표들이 쓰레기처럼 쌓여있다. “ 이 섬은 돈도 많이 받으면서 왜 안 치울까요?” “저게 다 다른 데서 떠내려 온 거예요”
쯧...그렇담 이 섬의 것도 다른 섬에 가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이제 겨우 10시 20분. 짧은 시간 만에 차 타고 배 타고 산행하고 이렇게 바닷가까지 닿아서 파도를 바라보며 바닷물을 움키고 있다는 게 그저 꿈만 같다.
지글지글... 꼬소한 배추에 싸먹는 삼겹살. 근데 정체모를 약술 딱 한 잔에 갑자기 경치좋은 이 바닷가가 통째로 내것처럼 느껴진다. 낮술이라 그런가. 어쨌거나 지금 나는 행복하다.무지...
다시 산행. 아니 오늘은 그저 산책이라고 해두자. 바위가 가로막은 해안 뒤쪽의 하나개로 내려선다. 배낭을 메고 모래사장을 걷는 이의 뒷모습도, 모래사장 위에 지어놓은-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나왔다는- 집 한 채도 생뚱맞아보이기는 마찬가지. 하나개유원지를 나서서 차량이 있는 곳까지 15분을 걷는다. 드디어 원점.
차량이동을 위해 대장님 혼자만 버려두고 일행은 다시 국사봉을 향한다. 산행 내내 갈 길을 훤히 바라보며 걷는다. 국사봉 정상에도 역시 삼각점을 알리는 철제탑. 바로 앞에 실미도가 길게 누워있다. 마침 바닷길이 열리고 있는 중이니 서두르자. 무의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려면 물 때가 맞아야 한다는 대장님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하산길을 잘못 잡아 결국 인당 2천원씩의 입장료를 내고 실미도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일행은 실미도를 둘러보기 위해 건너가고 나는 이때다 싶어 배낭에서 호미를 꺼내들었다. 다른 섬에서와 달리 모래가 단단하고 돌이 많아 호미질이 쉽지 않다. 게다가 관리소 확성기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로 연신 “양식장 밖으로 나가세요”를 외쳐댄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는 양식장 밖인데...
힘들게 세 개쯤 캐고나니 이 짓도 시들하다. 조개 한 자루...그래 아마도 그런 때가 있었겠지.
조개를 버려두고 멀리 실미도를 바라본다. 평범한 섬(들어가보지 않고 말하기 뭣하지만)에 이렇게 많은 이들을 불러모은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 싶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계신 대장님껜 바닷바람이 그저 안주인 모양이다.
이제 겨우 13시 30분. 조개잡이는 빵꾸났어도 조개는 먹어야지. 식당 화덕에 들러앉아 조개를 굽는다. 바닷내음 알싸한 조개 때문에 소주병이 볼링장 볼처럼 픽픽 쓰러진다. 후후...
매일매일이 똑같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가까운 무의도에 가보라.
이쪽 저쪽 아무데로나 발 디뎌도 길 잃을 일 없고 산내음, 바다내음, 조개내음...한꺼번에 맡을 수 있다. 가장 두둑한 보너스는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있다는거다.
이번 주말이라면 진달래까지도 그대를 기다릴 터......단, 인파를 피해 남보다 조금 일찍 나설 것!
^_^;;